1421년 9월 7일 의정부에서 이미 상왕이었던 태종의 휘호(徽號)를 올릴 것을 청하여, 개국의 공을 인정받아 태상왕으로 진봉되어 9월 12일 '성덕신공태상왕(盛德神功太上王)'으로 존숭되었다. 7개월 후인 1422년 4월, 날씨도 화창하여 세종과 함께 철원의 고석정(高石亭) 근처에서 사냥을 하여 노루·멧돼지를 한 마리씩 잡았고, 또 22일에는 다시 세종과 동교(東郊)에서 매사냥을 하다가 낙천정(樂天亭)에서 쉬기도 하였는데 이날 태종은 환궁하였다가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리고 보름이 넘게 병석에 있다가 1422년 5월 10일, 천달방(泉達坊) 신궁(新宮))[주 2]에서 세종, 양녕대군, 효령대군 등 아들들과 후궁 및 그 자식들, 그리고 신하들이 애통해 하는 가운데 56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일찍이 왕권을 물려준 태종은 줄곧 세종의 왕권 안정을 위해 노력하다가 승하한 것이다. 재위한 지 17년 10개월 만의 일이었다.